42세 떠돌이 골퍼, 19년만에 이룬 PGA 꿈
17년 전이었다. 정확하게는 2002년 US오픈 최종 예선 때였다. 크리스 톰슨이라는 무명 골퍼는 티오프 시간에 가까스로 맞출 수 있었다. 호텔비를 아끼려고 캔자스시티 집에서 대회장인 플로리다까지 밤새 차를 몰았다. 무려 20시간의 운전은 그를 녹초로 만들었다. 안도의 숨을 쉬던 찰라였다. 연습장에 굉음이 들렸다. 헬리콥터 한 대가 착륙한 것이다. 바람을 맞으며 내린 것은 그렉 노먼이었다. 마치 슬로 비디오처럼 재생되는 장면을 보면서 톰슨은 이렇게 느꼈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 이후로도 고단한 생활은 오랫동안 계속됐다. 전국을 떠돌며 미니투어와 각종 프로대회 월요 예선을 전전했다. 도시마다 싼 모텔이 어디인지, 밤샘 주차가 가능한 몰이 어디 있는지, 훤하게 꿸 정도였다. 중간중간 포기하고 싶었다. 월세와 차 보험료, 유틸리티 등 생계 걱정이 떠날 날 없었다. 주변의 안쓰러운 시선은 어쩔 수 없었다. 골프장 레슨 프로로 일하라는 제의도 많았다. 용품 회사나, 에이전시 같은 곳에도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꿈을 버릴 수 없었다. 무엇보다 격려하며 뒷바라지를 마다하지 않는 아내의 도움이 컸다. 올해 42세의 톰슨은 이번 주말 하와이 호놀룰루의 와이알레이 컨트리클럽에서 열리는 PGA투어 소니 오픈을 누구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19년만에 얻은 PGA 투어선수 자격으로 출전하기 때문이다. 캔자스 출신인 그는 지난해 PGA 투어의 2부인 웹닷컴투어 상금랭킹 20위에 올라 올해 PGA투어 카드를 땄다. 놀랍게도 그는 PGA 투어의 관문 격인 웹닷컴투어 역시 난생 처음이었다. 그동안 18차례나 퀼리파잉스쿨에 응시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작년 웹닷컴투어도 2017년 치른 퀄리파잉스쿨에서 간신히 얻어낸 조건부 출전권으로 뛸 수 있었다. 이미 지난해 3차례 PGA투어 대회를 치른 톰슨은 2차례 컷 탈락의 쓴맛을 봤다. 컷을 통과한 대회에서는 공동45위에 그쳤다. 장타 순위 149위(평균 286.3야드)기 말해주듯 젊은 선수들과 대결이 버겁다. 하지만 톰슨은 "내가 나이가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골프를 어떻게 치는지 안다. 장타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거리가 짧은 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장담했다. "이 길을 걸어온 걸 후회하지 않는다"는 톰슨은 같은 처지의 후배가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하겠냐는 질문에 "온 힘을 다하라고 말하고 싶다. 중간에 멈추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톰슨은 PGA투어 사상 최고령 신인은 아니라고 AP는 보도했다.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 앨런 도일(미국)이 47세에 PGA투어 카드를 땄고, 짐 러틀리지(캐나다) 역시 47세에 PGA투어에 입성했다. 그렇지만 도일은 PGA투어 카드를 획득했을 때까지 아마추어 신분이었고, 러틀리지는 선수 생활을 대부분 아시아투어에서 보냈다. 이승권 기자 lee.seungkwon@koreadaily.com